감자
1. 낯선 이들을 통해 들어온 구황작물, 감자
감자는 생김새가 울퉁불퉁하고 볼품이 없어서 유럽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식품이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감자를 먹으면 한센병에 걸리니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포고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만든 이후 밀을 비롯한 주식이 되는 곡식 대부분을 강제로 수탈해 가면서 아일랜드인에게 남은 유일한 먹거리는 감자였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시기에 감자가 식비를 줄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노동자들에게 권장하는 식품이 되면서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가족들이 모여 감자를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또한 일제 강점기에 산미증식계획으로 쌀을 수탈당하여 잡곡으로 연명했고, 새 땅을 개간하기 위해 간도로 간 후 불모지에서 몸부림치면서 허기진 배를 감자로 채웠다.
이런 서민의 음식이었던 감자는 조선에 언제 들어왔을까? 첫 번째 설로 이규경이 엮은 19세기의 대표적인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살펴보면, 1824년에서 1825년 사이에 처음 조선에 들어 왔다고 한다. 몰래 조선에 들어와 깊은 산속을 헤매며 인삼을 캐던 청나라 사람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경작해 먹던 것이 감자였다고 한다. 두 번째 설로 함경도 명천부에 사는 관상쟁이 김모씨가 연경을 갔다가 감자 종자를 얻어왔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이 감자는 ‘북저’ 혹은 ‘북감저’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염분 섭취가 많은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감자
감자는 가지과의 여러해살이식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곡물이다. 원산지는 남미 안데스 지역인 페루와 북부 볼리비아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온대 지방에서 재배한다. 식용하는 부위는 덩이줄기로, 대표적인 구황작물 중 하나이다. 감자는 당분이 적으나 단백질은 고구마보다 많고 보통 쪄서 먹는다. 특히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고 더 굵어지기 때문에 강원도의 고냉 지역에서 키운 감자가 전국에 씨감자로 보급되었고 강원도의 주요 특산품이 되었다.
강원도 지방은 감자밥, 감자수제비, 감자범벅, 감자조림, 감자부침개 등 다양하게 조리하여 먹는다. 감자는 비타민과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고, 지방과 단백질에 비해 탄수화물 함량이 높다. 또한 철분, 마그네슘과 같은 중요한 무기성분 및 비타민C, B1, B2, 나이아신과 같은 인체에 꼭 필요한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으며 당분이 낮아 좋은 영양식품이다. 감자의 철분은 같은 양의 쌀밥보다 많이 들어 있어 철분 섭취가 필요한 빈혈 환자에게 좋다. 감자의 칼륨 성분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염분을 많이 섭취하는 한국인들에게 좋은 식품이다. 또한 비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고혈압, 위궤양, 구내염 등에 효과가 있다.
3. 숨은 영양소가 폭발하는 가열의 법칙
감자는 껍질째 삶아야 비타민의 90%를 지킬 수 있다. 감자의 비타민C는 전분 덕분에 열을 가해도 변질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감자 껍질을 벗기거나 잘게 썰어 익히게 되면 비타민의 40~50%가 그대로 빠져나간다. 감자 껍질에는 철분과 칼슘 또한 풍부하므로 삶을 때 외에도 껍질째 조리하는 것이 좋다. 부종을 예방하는 칼륨, 피부나 혈관 등 몸의 산화를 방지하는 폴리페놀인 클로로젠산도 껍질째 조리하면 최대한으로 먹을 수 있다.
요즘 “감자는 탄수화물 덩어리라 살찐다!” 라는 이미지 때문에 홀대받기도 하는데, 알고 보면 사과의 7배나 되는 비타민C와 영양의 보고이다. 반면 고소한 냄새에 침이 꼴깍 넘어가는 감자튀김과 감자칩은 감자를 120℃ 이상의 고온에서 오래 익혀야 하는데, 이때 안에 들어 있는 당분이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튀기거나 구운 감자는 가급적 섭취를 줄이고, 감자를 조리할 때도 너무 태우지 않도록 주의한다.
4. 샐 틈 없이 영양소 꽉 잡는 보관법
감자는 상온에서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예상 외로 감자는 냉장실 같은 저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그 비밀은 비타민C 등의 영양소를 지키는 전분의 작용에 있다. 냉동실처럼 바로 얼어버리는 영하의 온도가 아닌 0℃ 정도의 적당히 추운 환경에서는 감자
스스로 내부의 전분을 분해하여 당을 만들어낸다. 얼지 않으려는 감자의 노력이 부패를 막고 맛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일반 가정의 냉장고라면 신선칸의 온도가 딱 적당하다. 2주간 감자를 신선칸에 보관하면 당도는 약 2배나 올라간다.
북극에서는 눈 속에 묻는 ‘설실 보관’이라는 방법을 활용하는데, 눈 속은 0℃ 전후로 바깥보다 따뜻해서 감자가 얼지 않을뿐더러 건조 현상을 막아주며 거친 감자의 당도를 16배나 증가시켜준다.
5. 감자와 찰떡궁합 음식
감자는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영양과 맛을 공급해주는 식품이지만 다양한 다른 재료와 만나서 뛰어난 요리로 태어난 것들이 많다. 감자와 찰떡궁합인 음식을 살펴보면 먼저 치즈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치즈가 찰떡궁합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감자의 신선한 맛이 치즈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 그 둘의 맛이 극대화되고, 단백질이 풍부한 우유로 만든 치즈는 감자에는 없는 비타민A와 단백질을 제공함으로써 영양 면에서도 서로 도움을 준다. 어떤 치즈든지 감자에 잘 어울리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치즈는 체다치즈를 꼽을 수 있다.
다음으로 버터 또한 감자와 찰떡궁합이다. 소스와 오일, 향신료는 감자의 맛을 몇 배 이상으로 끌어올리지만 감자에 버터를 첨가하면 감자를 부드럽게 해주고 버터가 가진 염분과 비타민 A는 감자의 비타민 B, 비타민 C의 흡수력을 높이는 역할까지 하면서 영양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 마지막으로 감자요리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베이컨이다. 베이컨은 감자요리에 부족한 지방과 단백질을 더해주며 특히 훈제 베이컨의 풍미는 감자의 맛과 향, 영양 면에서 부족한 면을 채워준다.
[ 출처 ] : 1. 그 조리법, 영양소의 90%를 버리고 있어요!(2018) / 도쿄지케이카이의과대학 부속병원 영양부
2.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속 조선 야사(2017) / 송영심
3. 암을 예방하는 신의 선물 슈퍼푸드(2018) /유현민
4. 잘 먹고 잘사는 법_감자(2004)/전수미
